지난주 학교에서 Radical Collaboration(우리말로 급진적(?) 협업, TED Talk 링크)이라는 책의 저자가 진행하는 협업에 대한 워크샵이 있었습니다.

양계장 이야기로 시작됩니다. 퍼듀대학에서 협업에 대한 실험을 닭으로 해본 것인데요. 스타플레이어(달걀을 많이 낳는 측면에서) 닭들은 자신의 능력이 좋은 것도 있지만, 주변의 닭들이 달걀을 많이 낳지 못하도록 억누르는 경향이 있다고 하는데요. 이 스타플레이어 닭들만 모아 놓고 레드존을 만듭니다. 그리고, 서로 잘 지내며 협업하는 닭들을 모아 그린존을 만듭니다. 1년이 지난 뒤의 결과인데요. 레드존에 있는 스타플레이어 닭들은 절반이 넘게 다른 닭들에 의해 죽은 반면, 그린존 닭들은 달걀 생산성이 260%나 상승했습니다.

닭들의 레드존, 그린존 이야기(겉으로는 잘 지내는 것으로 보이지만, 속으론 서로 신뢰하지 않는 핑크존도 있습니다)는 인간의 협업에서도 똑같이 존재하는데요. 저자는 자신의 방어적인 태도를 관리하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연약함을 느낄 때 방어적으로 되고, 방어적으로 되면 우리의 생각이 굳고,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까지도 방어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방어적이라는 것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으로부터 나를 방어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단 우리 내면에서 우리가 느끼고 싶지 않은 두려움으로부터 방어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인정, 능력, 애정에 대한 두려움들 말이죠.

워크샵에서는 방어적일 때 나타나는 50가지 행동 중에 나는 어떤 행동들을 많이 하는지 알아차리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방어적인 태도를 줄일지 행동 계획을 짜보았습니다. 방어적인 태도와 원인이 되는 두려움을 인지하고, 방어적인 태도를 줄이며 두려움을 조금 더 능숙하게 대하는 방법을 배우는 시간이었습니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모였지만 저희 팀의 경우는 그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해커톤을 하기에 다섯 명도 적지 않은 인원인데 어쩌다 여섯 명이 한 팀이 되었고, 게다가 두 명은 온라인으로 참여해 커뮤니케이션이 무척이나 어려웠습니다. 의견을 좁히고 발전시켜야 하는데 잘되지 않았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한두 시간 정도 시간이 남아, 팀원들과 산책을 하며 그날의 과정에 대해 성찰해보기 시작했습니다. 왜 이렇게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웠던 걸까, 어떻게 하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함께한 소감 등을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말미에 한 친구가 "안 좋은 말이어도 괜찮아. 오늘의 나에 대해 피드백해 줄 수 있어?"라고 물었습니다. 모두가 진심으로 응했고, 그 친구와 함께해서 좋았던 점, 아쉬웠던 점을 찾아서 이야기해주었습니다. 그 후 다른 친구도 피드백을 부탁했고, 그렇게 약 한 시간 동안 모두를 서로 피드백해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실 저는 피드백을 요청해야 하나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쉽게도 함께한 사람들과 솔직한 피드백을 나눴던 경험이 아직 없었고, 부정적 피드백을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싶었습니다. 저만 안 하기가 뭐한 것도 있었고, 이런 분위기라면 나도 건설적인 피드백을 받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저로선 꽤 용기를 냈던 것이었습니다. 

용기의 보상은 꽤나 달콤했습니다. 한 시간의 대화는 마치,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어?'라고 묻고 모두가 진심으로 그 시간을 채워주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 조금 더 연결될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꽤 많은 협업을 해왔으면서, 이렇게 서로를 위한 시간을 가져 보지 않았다는 것이 참 아쉽기도,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에는 랜선으로 한국의 어떤 행사를 참여할 일이 있었습니다. 이틀 동안 서로 이야기 나누고, 쉬어가는 시간이었는데, 그중에서 한 시간은 '깊게 공감하는 대화 나누기'라는 세션에 참가하였습니다.

우리의 감정을 알아차리고, 그 감정을 일으키는 우리의 욕구를 발견함으로 나와 타인과 공감하는 대화를 촉진하는 '비폭력대화' 워크숍이었습니다. 실습을 해보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는데, 7명의 참가자 중 대표로 모두에게 인터뷰를 받을 한 사람이 필요했고, 한번 해보고 싶어 제가 그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먼저 제가 간략히 요즘 느끼고 있는 긍정적인, 부정적인 감정들을 나누었고, 다른 분들이 추가로 질문하며 저의 감정을 함께 찾아보고, 이후에는 저의 욕구까지도 함께 찾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평소라면 이야기하지 않을 저의 TMI의 향연이었고, 공감받는다고 느낄 때 정말 감사함을 느꼈고, 때로는 '나 이 정도로 불행하진 않은데..'라며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방어적인 태도와 솔직함 사이의 내적갈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질문들을 통해 저의 속내가 상당 부분 탈탈 털리고 나서, 이상하게도 참 좋았습니다. '저를 위한 시간을 내어주실래요?'라며 최대한 솔직해지려 노력했고, 함께해주신 다른 분들도 저를 공감해보려는 노력으로 함께해주셨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랜선대화였음에도 서로 연결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날은 제가 저의 부정적인 감정을 털어놓으려 했던 정말 몇 안 되는 날 중 하나였기에 의미가 더 컸습니다. 지금까지 저의 부정적 감정을 마주하는 것을 스스로도 회피하고 있었고, 주변과도 나누려 하지 않음을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방어막을 내려놓고 물어봐야겠습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어?'

그리고 누군가가 제게 요청할 때면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 이 시간 만큼은 너만을 위한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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