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부터 본격적으로 수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원래는 파리 시내에 있는 분교와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주로 수업이 이뤄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더 넓은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해서 파리 외곽에 있는 캠퍼스로 오가고 있습니다. 편도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타야 하는데, 사람으로 가득 찬 지하철이 아니고 바깥 풍경도 볼 수 있어서 아직까지는 좋습니다.

오늘은 학교 이야기로 시작해볼까 합니다.

   

이곳에서의 수업은 크게 세 종류(창업 관련 수업/전문 분야 수업/프로젝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창업 관련 수업은 재무, 회계, 디자인씽킹, 창의성, 마케팅, 비즈니스 플랜 등등의 다양한 주제로 이루어져 있는데,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주로 HEC 졸업생이신 분들이 직접 와서 가르칩니다. 전문 분야는 크게 하이터치(High Touch, 인간의 감성과 기술의 조화를 통해 고부가 가치를 창출하는 영역)와 딥테크(Deep Tech, 기술을 이용한 상품이나 서비스에서 인터페이스나 기기와 같은 사용자와의 접점이 아닌, 그보다 밑바탕을 구성하는 기술)로 나뉘고, 제가 듣는 딥테크의 경우 각 분야의 전문가이자 주로 Polytechnique 졸업생 혹은 교수님들이 와서 직접 가르칩니다. (X-HEC Entrepreneurs 프로그램은 프랑스의 과학기술 분야 그랑제꼴 Polytechnique과 경영 분야 그랑제꼴 HEC의 공동 석사 과정입니다. Polytechnique는 줄여서 X라고도 불립니다.)

창업 관련 수업처럼 폭넓게 배우는 과목도, 전문 분야 수업처럼 깊이 있게 배우는 과목도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게 훌륭하다고 생각하는데, 더 엄청난 건 이곳의 프로젝트입니다. 9월부터 12월까지 총 3개의 프로젝트가 진행됩니다. 스타트업 초기 과정을 직접 경험해보는 스타트업 미션,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 과정을 경험해보는 스케일업 미션, 망해가는 스타트업을 다시 되살려보는 리테이크(retake) 미션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은 5~6주 동안 상당히 빡세게 진행됩니다.

지금은 스타트업 미션이 진행 중인데요. 저는 2명의 친구와 함께 디지털 박물관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젝트의 모티브는 박물관들이 코로나 등의 이유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디지털화를 통해 이를 극복 할 수 있지 않을까 정도의 방향성이고, 관련 업계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 프로젝트 제공자(Project Provider)로 참여해 기본 아이디어와 업계의 네트워크를 제공해 줍니다. 팀마다 프로젝트 멘토도 한 명씩 있는데 저희 팀의 경우, 연쇄 창업가이자, 저희 과정에서 비즈니스 플랜 수업을 해주시는 교수님이십니다. 5주 동안 박물관, 갤러리, 이들의 고객과 비고객 등을 다방면으로 탐구하고 솔루션과 비즈니스 모델까지 도출하여 마지막엔 100명의 심사위원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합니다.

지난주 화요일에 팀원들과 프로젝트 제공자, 프로젝트 멘토와 함께 킥오프 미팅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수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관찰 주간(Observation Week)이라는 이름 아래, 수업은 없고 프로젝트 관련 관계자들을 만나는 미팅들이 연이어 있었습니다. 저희는 베르사유, 파리의 박물관 관계자들과 미팅을 하였고, 이 초기 미팅들은 전부 프로젝트 제공자가 연결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연결은 또 다른 연결로 이어지는데요. 박물관 관계자들은 흔쾌히 자신들의 박물관을 보여주고, 저희가 방문해보면 좋을 곳의 무료 초대권도 주고, 다른 연결 지점들도 알려주었습니다. 

놀라운 건, 123명, 41개 팀 모두에게 정말 다양한 프로젝트, 프로젝트 제공자, 프로젝트 멘토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 한팀은 스위스의 해양 레저 회사와 프로젝트를 하게 돼서, 스위스로 이동해서 관찰 주간을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더 놀라운 건, 스케일업 미션과 리테이크 미션 때는 또 다른 프로젝트, 프로젝트 제공자, 프로젝트 멘토가 있다는 것이고요. 이 프로그램엔 두 명의 메인 교수님이 계신대요. 한 분은 Polytechnique, 한 분은 HEC 소속이고, 이 두 분의 주요 역할은 이 연결의 시스템을 만드는 일인 것 같습니다. 물론, 일부 가르치기도 하시지만요. 왜 이 분들의 직함이 Professor가 아니라 Director 인지도 이제는 알겠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크 학교에는 명확한 방향성 아래에 연결의 시스템을 만드는 Director가 필요하니까요.

우연히도 저의 스타트업 미션 프로젝트는 박물관이 주제입니다. 이곳 관광객이기도 한 저에게 이런 행운이! 덕분에 지난주에만 네 곳의 박물관을 들를 수 있었고, 그중 두 곳에서는 전시도 둘러 보았습니다. 게다가 한 곳은 베르사유 궁전 근처여서, 팀원들과 같이 잠깐 시간을 내어 베르사유 궁전 투어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지난주에, 프랑스 오는 비행기에서 읽다가 만 '떠남'(이용규 지음)이라는 책을 마저 읽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의 삶은 단순히 버텨내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품고 함께 있는 것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선, 제 마음에 기대와 감사, 그리고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